김용만은 1933년 1월 22일 태어나 2024년 9월 27일 향년 91세로 세상을 떠났다.
| 이름 | 김용만 |
|---|---|
| 출생 | 1933년 1월 22일 |
| 사망 | 2024년 9월 27일 |
| 향년 | 91세 |
| 직업 | 트로트 가수 |
| 고향 | 서울시 종로구 종로5가 |
| 데뷔 | 1953년 「남원의 애수」 |
| 대표곡 | 남원의 애수, 효녀심청, 청산유수, 회전의자 |
데뷔와 활동 이력
김용만(1933~2024)은 가수이자 작사·작곡가, 영화 음악감독, 영화배우로 활동했다. 1953년 「남원의 애수」를 발표하며 가수로 데뷔했다. 1950년대 후반부터 만요 가수로 활동했고, 1960년대에는 신민요를 불렀다. 2024년 9월 27일 향년 91세로 별세했다.
대표곡과 음악 활동
대표곡으로는 「효녀심청」, 「청산유수」, 「삼등인생」, 「청춘의 꿈」, 「생일 없는 소년」, 「회전의자」 등이 있다. 「잘 있거라 부산항」과 「못난 내 청춘」, 「왈순 아지매」도 그의 노래로 꼽힌다. 작사·작곡가로도 활동해 「행운을 드립니다」, 「두 마음」, 「명동 블루스」 등 100여 곡을 남겼다. 전통민요 보급에도 참여했으며, 이은관·이호연·전숙희 등과 민요 음반을 냈고 대금 연주자 이생강의 독주 음반을 구성하고 기획했다.
방송·무대 활동
김용만은 영화 음악감독으로 「월하의 공동묘지」를 통해 영화계에 데뷔했고, 영화배우로도 활동했다. 여러 영화의 주제가를 불렀으며, 가수 활동과 함께 영화 음악 작업을 이어갔다. 활동 이력에는 중동 지역과 사할린, 카자흐공화국, 베를린 한인회를 위한 위문·순회공연도 포함됐다. 그의 노래 「남원의 애수」를 기리는 노래비는 2005년 남원관광단지에 세워졌다.
김용만 관련 자주 묻는 질문
김용만은 언제 세상을 떠났나요?
김용만은 2024년 9월 27일 향년 91세로 별세했습니다. 1933년 1월 22일생입니다.
프로필 사실은 공개 자료로 교차 확인했습니다. 참고: 한국어 위키백과 «김용만». 최근 활동은 트롯광장 보도에 근거합니다.
